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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헛소리 2권 소개와 목차
'우리여, 다음 생은 지구인이 되기를 거부하라! 그리하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찾으리라' 日土道人 지음
영혼을 도둑맞게 될 지구인이여 ! 언제 누가 마지막 지구인으로 남게 될 것인가 ? sureness Song of God Love 日 道 土 房
부주(符呪)란,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음양(陰陽)의 상징을 하나의 우의로 표현한 것으로 그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사고를 직접 체험하는 욕구를 느끼고 싶은 법칙을 자연 앞에서 깨닫게 하는 것이 부주(符呪)의 본질이다. 하늘이 그리운 사람들은 천부주도가인 천부주경을 부른다. 符 呪 妁 道 人
천부주경(天符呪經) "부심을 통해서 온 세상을 무량한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발휘하고 다스리는 가장 크고 가장 작은 올바른 우주의 창조 에너지에는 하나님의 의식이 방출하고 있는 황당한 헛소리가 흐르고 있으느로 우리 영혼을 천부주(天符呪)에 맡겨라. 그리하면 그 천부주가 우리의 영혼에 도(道)를 불러들여 보은을 받으리라. 그것이 바로 우리를 위한 삶의 구원이고 그것이 절대적 권능을 가진 일체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천부주(天符呪)가 곧 영험한 도력(道力)이므로 우리 영혼이 진기(眞氣)를 받게될 것이다. 우리가 나의 부주작도경(符呪妁圖經)을 가장 귀하고 높은 것임을 진정으로 믿고 굳은 결의를 다짐하고 따른다면, 그것은 언제라도 우리만을 위해서 우주의 변화를 주관하고 절대 지고 하나님의 권능이 발휘할 것이다. 천부주(天符呪)가 우리에게 무형이형(無形而形)하여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성(性)을 통해 지선유일(至善唯一)의 법력(法力)으로 그 명(命)을 깨닫게 하리라. 그리하여 우리 영혼에 천부주의 능력이 우리의 삼단(三丹)을 통해서 *부처(符處)를 숭배하고 신성계(神聖界)의 천부국(天符國)에서 무위이작(無爲而作)하니 최고무상(最高無上)의 덕량(德量)을 얻게될 것이다 * 병진년(1916년) 9월 9일 계연수(桂延壽) 라는 사람이 묘향산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깊은 골짜기에서 걔울물 위 큰바위에 새겨진 이상한 글자를 발견하고 정성껏 바위에 낀 이끼를 손으로 쓸었더니 두 눈이 문득 밝아지고 글자 획이 문명하게 보여 계연수는 이에 절하고 꿇어앉아 공경히 읽었으니, 그것이 한웅천왕의 천부인을 통해서 인류을 최초로 교화시킨 보배로운 81자 천부주경문(天符經文)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날 바위에 새겨진 글자를 힘들게 한 번 탁본했으나, 글자가 심히 흐릿하여 다시 탁본하려 하니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는 바람에 그만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그 길로 황급히 산에서 내려와 산사(山寺)에 머물면서 밤이 새도록 바위의 문자를 풀어보려고 하였으나, 그 요령을 얻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계연수는 자신이 젊어서 배움이 짧고 늙어 총명함이 떨어져 읽기만 할 수 있었으나, 마침 경성에서 온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경성에 단군교(檀君敎)가 있다는 말을 듣고 묘향산 바위에서 탁본한 것을 경성의 단군교단으로 보냈고, 단군교단에선,는 이 경문을 필사본으로 만들어 대종교의 교리로 활용하여 중생을 가르치는데 사용하고, 천부주경을 해독하고 해석하여 한배달민족의 유일한 경전성서(經傳聖書)로 알리고 읽게하면 단군의 교운(敎運)이 더욱 더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라 기대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천부주경은 1979년 '환단고기'가 다시 편찬되면서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으나, 80년 대 학자들 중에서 '환단고기'가 위서(爲書)의 논쟁에 휘말리게 되면서 천부주경도 그 진위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계연수가 역사에 실제 인물이 아니고 단군교 신자들끼리 조작한 인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천부주경은 글자의 뜻 우리로 하늘의 보람(天符), 곧 하늘의 신비를 암시한 글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수리(數理)에 의하여 천지창조와 그 운행의 법칙, 또는 만물의 생장성쇠(生長盛衰)하는 원리를 81자의 짧은 글로 가르친 것이다. 우주와 인생은 한얼님의 조화신공(造化神功)으로 되었고, 하늘. 땅. 사람의 삼극(三極)도 근본은 동일한 것이며, 사람의 마음도 태양을 근본으로 한얼과 같다는 천인일리(天人一理)의 원리를 가르친 것이다. 천부주(天符呪)란 하나의 세계로 한배달 민족의 정신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언어로 존재하고 있는 초월의 철학이다. 무릇 존재라 함은 보이는 것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도와주기 때문에 모두가 존재할 수 있다. 우주의 이치는 보이지 않는 것은 상계(上界)에 존재하고 보이는 것은 하계(下界)에 존재하며, 물질은 보이는 힘이고 정신은 보이지 않는 힘이다. 천부주경은 한배달민족의 정신계가 다른 세계인의 정신계를 압도하고 있으며 언제나 상계에서 존재하고 있으니, 그 정신의 힘이 물질의 힘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천부주는 그 정신의 힘을 나타내는 권능이며 그 에너지의 강한 섬광을 형성시키는 구체적 힘의 발로이므로 천부주가 위대한 하나님의 힘이고 실체에 상응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정신과 물질의 세계를 동시에 지배할 수 있는 것도 '천부주(天符呪)'밖에 없다고 했던 것이다. 日 土 道 人
황당한 헛소리 2권 목차
천부주작인이 영혼을 치유 하나님이 지구인에게 천부주작인을 가지고 상제의 원리로 분명하게 증표해 준 이유는 이것을 통해서 다양하고 복잡한 자연이 무격(巫格)의 대상이 아니라 인격(人格)의 대상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자연의 일체가 모두 하나님의 소유물이며, 또한 하나님이 직접 창조했다는 것을 분명히 공포하여 다양하고 복잡하고 분리된 자연의 세계가 하나님이 천체로서 포용하고 있음을 지각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은 자연 그 자체에 존재하고 있다. 그럼으로 자연 속에 존재하는 만물의 일체가 비록 개별적인 부분들로 이루어 있으나 그 자체가 하나님이다. * 명상의 세계, 즉 깨달음을 통해서 지구인의 영혼이 대우주 차원으로 진화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영적인 진보를 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지구인에게 제공한 천부의 대지혜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비범한 초능력을 터득할 수 있다. 현재 지구에서 윤회생을 보내고 있는 지구인은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하나같이 과거에 루웅이 자신의 마인드 바이러스를 퍼트려서 지구인의 영혼을 외니퍼니로 병들게 한 사실 때문에 아직도 완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누구든지 그 사실에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진리를 깨달은 성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에서 생존하는 모든 성인들을 천부주작국으로 이주시켜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지구에 생존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 우리가 인정하는 범위 안에 해당되는 성인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쨌던 우리가 여러분의 병든 영혼을 치유할 목적으로 한웅의 천부주작인을 계기로 삼아 도(道:진리의 길)의 방향을 제시하고 개선하여 천부주경(天符呪經)의 헛소리로 변경하였다. 천부주경은 지구인 여러분이, 나는 영혼을 치유하고 있거나, 또는 영혼의 질병이나 질환으로 인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것과 진리의 길을 실천해야 할 방향을 놓치고 본연의 길에서 벗어난 상태를 바로잡아 치유를 돕기 위한 통로, 즉 채널(channel)인 것이다. 그리하여 고차원 에너지의 정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인터널 비젼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나님의 존재를 특정한 모습으로 이야기하자면. 하나님이란, 고차원적 에너지를 가진 영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들도 하나님(上帝)과 마찬가지로 고차원적 에너지를 가진 영적인 존재들이다. 우리들이 전 우주에 존재하는 지성체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다. 거기에 하나님이란 우리들의 대표, 우리들의 대통령쯤 된다고 할까? 지구인들이 상상하여 숭배하고 있는 하나님(上帝)이라는 존재는 소위 우리(太一)들 중에 한 사람을 지적하여 가장 위대한 태일천사(太一天師)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웅이 천부주작인을 가지고 하계로 떠났던 그 당시에는 지구인의 영혼은 루웅에 의해서 와니퍼니 질병을 앓았다. 그 저차원 에너지 때문에 지독하고 악질적인 영혼의 병을 깨끗하게 치유되어야 비로소 와니퍼니로부터 구출되어 건강한 윤회생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생명이 죽음을 통해 윤회한다는 것은 곧 부활한다 것을 의미한다. 부활이란 영혼이 고차원 영적 에너지의 세계를 향하여 완성되는 것을 말한다. 요컨대 고차원의 상계(上界)에 들어오면 우리들의 모습으로 부활하게 된다. 사실은 우리도 그 과정을 거쳐서 진화된 존재들이다. 우리들[太一: 天人]의 지구인에게 지혜의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천부주의 텔레파시 감응에 교감하고 시청하려면 여러분이 스스로 학습하여 단련된 영적 능력을 가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 영적 능력의 경지에 따라서 각 개인들이 천부주(天符呪)를 활용하는 영적인 차원이 내면적으로 확대되어 나간다.
천부주경의 출현 이유 하나님(上帝)이 도를 이루고 도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지구인의 삶을 바라보고 매우 흡족하게 만족하였다.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신앙심을 배우고 수행하는 결과로 얻어진 바람직한 성과이다. 공부하는 자세와 지성의 각성을 통해서 성취하려는 태도가 하나님이 창조한 대우주에 존재하는 인간계의 공동의 목표이자 통합적으로 이루어야 할 희망의 세계인 것이다. 자연의 대상을 신앙심을 통해서 끝까지 명상하는 지구인이 스스로 노력으로 말미암아 사물에 대한 이해와 관점이 달라지고, 그 모든 경험을 통한 삶의 지혜가 보다 심오한 영적 에너지를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에 존재하는 천인(天人: 외계인)들은 지구인을 먹이 감으로 생각하고 지구인의 생명을 불사약에 사용되는 재료 이상으로 생각해 주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견해는 아직도 천인들에게 습관적이고 보편적인 의식이다. 천인들이 그 개념을 깨 버려야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려면 전 우주적인 먹이사슬에 관한 환경적 요소를 적당히 이용해야 하고 또한 그것이 대우주에 존재하는 전체의 생명에게 일반적으로 주어진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지구인 여러분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차원으로 이끌어 주려고 천부주경을 공포하게 되었다. 이른바 대우주의 보편적인 영리의 법칙을 설명하는 가운데 지구인 여러분도 우주 전체에 속하는 개별적인 존재이며, 또한 하나님에게 포용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서 우주의 영리(靈理)를 바라보고 사리 분별하여 지구인 여러분의 운명을 개인적으로 선택하여 자유를 통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려는 목적으로 천부주경을 세상에 펼친 것이다. 사실 천부주작인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일만 년 전에 한웅이 지중해에서 단군을 앞세워 지구 세계가 영적의 길로 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였고, 그 후로는 수많은 황당한 헛소리를 통해 영적으로 우수한 지구인과 우리들이 교령하여 천부주경을 하나씩 완성해 나갔던 것이다. 천부주경이란, 천부주(天符呪)를 경(經)으로 판단한다는 뜻이다. 지구인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전들은 하나같이 천부주경에 속하는 것들이다. 우리가 지구인에게 천부의 사상, 천부의 원리를 알리고,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리의 말씀을 여러 방향으로 연관시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진리를 이야기하는 모든 글들은 모두 천부주경의 바탕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천부주경을 과거에 말했고 또 현재에도 말하고 있으며, 그리고 미래에도 말할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이 직접 일웅(一雄 )의 영혼에게 부탁하여 지구인 메시아 예수를 선택하도록 하였고, 그 청년에게 황당한 헛소리를 전달하여 지구인 여러분에게 천부주작국의 세계를 밝혀서 지구인의 영혼이 죽음을 통해서 부활하고 있다는 것을 확고부동한 사실로 규정해 주므로 여러분 스스로에게 부여한 하나의 학습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황당한 헛소리는 위대한 지구인에게만 통용되는 특별한 텔레파시 감응 통로이다. 고차원적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는 지구인은 우리가 말해 주는 천부주경의 정보를 듣고, 보고, 느끼면서 마치 작업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리법칙을 어떻게 바꾸고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제안하여 합의할 수도 있다. 우리가 계연수에게 황당한 했던 천부주경(天符呪經)은 그 모든 경전들을 마지막 정리하는 단계에서 내보내 준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그것은 고차원 에너지가 저차원의 에너지를 어떤 식으로 포옹하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관한 모든 정보 채널을 찾아내어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을 제시해 준 것이다. 그것으로 무엇을 본받게 하고, 무엇을 상상하게 하고, 무엇을 창조하게 할 것인가? 하는 특정한 종류의 정보를 조언하고 있는 황당한 의 원본으로 고차원으로 돌입한 지구인의 영혼에게 그윽이 신령스러운 영리의 세계를 연구하고 궁구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배려해 준 것이다.
단군은 무당 ?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를 무교의 신화로 이해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단군(亶君)이 하늘에 천제(天祭)를 주관하는 제사장으로 무녀,무당의 무신(巫神)으로 생각한다. 특히 육당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에서 군무일원론(君巫一原論)을 설명한 것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공명을 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은 육당의 견해가 아주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며, 단군(檀君)은 무신(巫神)이 아니다. 오늘날 무당 집이나, 무슨 사당 같은 곳, 그리고 단학 수련장 같은 곳에 단군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것은 근래에 들어와 생긴 일이고 본래는 한배달 민족의 민간 신앙에는 단군을 숭배하는 신앙의 체계를 이루지 못했다. 한민족의 전통 민간사상은 육당의 말 우리로 군무일원이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하늘에서 한웅의 무리가 지구로 찾아 왔을적에는 무신을 내 세운 제사장의 지배 시대가 끝나고 민중의 지배층 세력들이 새로운 이념의 종교를 내세워서 정치적 일대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시대적으로 청동기 문화가 세계적인 추세로 유행하고 있어 전쟁의 무기들이 상당히 위협적으로 발달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복자들끼리 영토 확장의 전쟁으로 세상은 피비린내 풍기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와 같은 상황에 무슨 이유로 외계인 한웅의 무리가 태백산으로 내려왔을까? 한반도에는 아직도 반듯하고 그럴싸한 문명국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유는 심성이 곱고 아름다운 동이족이 모여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은둔자적인 기질성 때문에 영웅들이 벌리는 영토 확장이나 전쟁, 분쟁같은 소란스러움에 강요당하거나 휘말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세속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세상일에는 초연하고 방관자들이었다. 그들은 한반도를 은둔의 나라 신선국(神仙國)으로 정하고 자기들끼리 모어울리고 모여서 우리를 만들어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하였다. 사실이 그러한데 환단고기에는, 그 당시 한반도에 거주한 동이족을 세계를 정복한 지배자의 민족으로 묘사해 놓았다. 도대체 그렇다면 동이족 왕국은 어디에 있었나? 정말로 동이족이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고대 문명국을 건설한 것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은 유적들이 신시(神市)라고 불렸던 그 땅에 어디엔가 유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웅의 신시가 있었다는 바이칼 호수나 백두산. 혹은 태백산 근처에서 단군의 유적으로 보이는 돌 조각 하나도 없었다. . 현대의 실증적 합리주의의 추세에 거슬러 볼 때, 그 환단고기에 기록된 단군 왕국에 관한 역사의 진실성이 현대인을 설득하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어디까지나 신화로 설명하고 있다. 분명히 사실인데도 역사로 실증할 수 없지만 그것을 논리적인 체계로 설명이 가능한 이야기를 신화로 남기게 된다. 그리고 신화의 역동성은 어떤 사실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설적 허구로 포장하여 더욱 더 신비감을 자아내는데 있다. 그러나 소위 역사라고 하는 것은 허구인 것을 사실같이 꾸며서도 안되고,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왜곡해서도 안된다. 어디까지나 역사는 사실을 그 사실 자체만으로 기록하고 남겨 두어야 한다. 역사의 정의를 이용하여 조작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야사로 유명한 <환단고기>가 그 대표적인 저작물이다. 거기에 기록한 단군의 역사라는 것은 신화의 허구성을 역사의 진실성으로 변조하려는 의도성을 너무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더욱이 한웅의 삼성세기 하편에 신시 역대기에 기록한 단군의 계보는 그야말로 조작된 흔적을 우리로 보여주면서 역사는 완전실재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위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행동은 아예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로 역사의 정의까지 우롱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가 아니라 신화라는 입장으로 이해한다면 얼마든지 그 행위는 민족의 이념에 역동적인 힘과 자존심에 용기를 불어넣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관한 황당한 단군신화를 기록한 문헌 집은 일연의 <삼국유사>를 으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신화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한배달의 토양에서 생겨난 아름답고 신비한 신화들 중에서 하필이면 단군 설화를 삼국유사에서 건국의 신화로 설정하였는가? 그리고 정말로 단군의 신화가 한배달의 개국 신화로 일연이 살았던 그때까지 야사에서 구전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삼국유사에 '紀異 第 1'편에 중국의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을 처음에 등장시킴으로 아시아 역사의 주체가 중국이며, 그 가운데 한배달 민족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으로 오인 받을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동이족 신화 가운데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신화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단군의 설화를 선택한 것은 그 설화의 내용상으로 단군의 탄생이 중국 역사의 시조와 같다는 것으로 남의 나라의 지배적 위협을 받고 있는 민족에게 큰 용기를 던져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단군의 설화를 '一然'이 선택한 것은 고려왕조의 주체성을 세계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의도적인 목적이 있었다. 바로 그 역사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일본 사관들이 한배달 민족의 고대사를 비판하고 날조할 수 있었다. 이를 주지하면, 몽고와의 40년간의 항쟁 속에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자 민중들이 민족 공동체의 단결심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一然'은 민족적 자존심의 상처를 안고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 그래서 고려인들이 중국과 맞먹는 유구한 역사를 신화를 빌어서 실증하려고 했다. 이 어설픈 각본으로 말미암아 단군신화는 순수하게 신화로 해석되지 못했고, 한편으로 단군의 존재가 신화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역사의 인물로 단정할 수도 없는 상당히 애매 모호한 것이 되고 말았다. 아무튼 단군신화를 통해서 한민족이 중국보다 먼저 땅의 정복자로 두각을 나타냄으로 몽고뿐만 아니라 주변국 가로부터 위상과 체면을 복구하려는 의도성이 애처로운 비명같다. 때문에 일본 학자들이 단군신화는 위작이다? 라고 의심한다. 그리고 단군신화에 무대가 애매 모호한 지명으로 설정되었다. 그 지명을 억지로 추론한 끝에 비이칼 호수 근처라고 생각하고, 그 일대 지역을 조사한 결과 한민족의 고대 문화라고 생각하는 유산이 전혀 발견이 되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단군이 실재한 인물이고 단군의 나라가 융성하였다면,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문명을 이룩했는지, 그 모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해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사실 신화는 기존하는 사실이나 역사적 사건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하나의 설명 체계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기존 사실을 바탕으로 신화를 구성하지는 않는다. 그리스 신화 같은 경우는 실증적인 면에서는 완전히 허구이지만 인간의 심리 세계를 사실 바탕으로 상징하여 서술함으로 위대한 신화로 완성하였다. 만약에 '一然'이 국조신화를 샤머니즘에 입각하여 신화 그 자체로 천명했더라면 오히려 한배달 민족의 주체성 확립에 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13세기에 일연의 저작물 삼국유사가 없었더라면 단군신화는 한배달 민족의 역사에 존재할 수 없었다. 이 신화는 삼국유사와 함께 태어났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것이 아니고 단군신화가 구비 전승으로 꾸준히 한배달 민족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국조의 신화라면 고려인들의 민간의 신앙에 단군을 확실하게 숭배하는 전통이 있어야 한다. 고려 이전에 그 유구한 역사 속에서도 단군을 숭배한 사실은 한 번도 없었다. 조상 섬기기를 세계에서 으뜸인 한배달 민족의 민중들이 단군을 모시는 일은 한번도 없었으나 전국 곳곳에 널려있는 사당에서 호('虎) 라는 산신령님을 민족의 시조로 숭배해 왔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것이야 어땠는지 불구하고, 그 당시-삼국유사를 기록한 연대, 13세기- 고려 시대에 기자(箕子)를 숭배하는 사당을 지어 놓고 제사했던 풍습이 남아 있었다. 기자가 누구인가?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나라를 다스리기 1천5백 년이었다. 주(周의 호왕(虎王) 즉위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수가 1천9백8세 이었다고 한다. 호왕(虎王)은 주나라 무왕을 이야기한다. 주나라 무왕이 단군을 속출하고 조선의 땅을 기자에게 본봉국(分封國)으로 넘겼다는 이야기이다.
단군신화의 황당한 헛소리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할 당시까지만 해도 고려에는 기자를 숭배하는 사당은 있었으나, 단군을 숭배하는 사당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려인 민중들은 단군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단군이라는 이름은 신화를 작성하면서 만들어진 의미적 명사이다. 그러면 일연(一然)은 어디서 그 이름을 인용했을까? 단군(檀君)이라는 단어의 뜻은 무속의 제사장의 이미지가 아니라 고대 바빌로니아 사회의 제정일치를 담당한 교황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다시 일연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일연은 단군은 한웅의 아들이라고 했다. 단군의 존재를 알기 위해선 먼저 그를 낳게 한 아버지에 대한 신화적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미리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한웅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天符印)을 위임받고 신시(神市)로 내려와 봉선의 예를 치르게 된다. 그는 조그만 나라를 다스리는 인물로서가 아니라 세계를 다스리는 권력을 쥐고서 천자로서 행하는 교화의 임무를 이행하였다. 수메르, 바빌로니아의 신화에서 '산'이라는 표현은 숲에 둘러싸인 신전을 가리킨다. 그리스 신화는 이를 올림포스, 즉 바베로이(숲속에 사는 야만인)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키드(셈)인의 황제 사르곤 비문에는 기원전 2334년(단군 왕검의 건국 연대 후1년) 도우두르 라는 곳에 다곤(단군)신으로부터 마리, 야르무티, 이프라와 삼나무 숲, 은광(銀鑛)을 하사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오늘날의 시리아 땅과 레바논, 서북쪽 터키(타우르스산) 땅까지 미친다. 이것은 바빌로니아 제국의 영토이고, 그것을 우리니라 말로 '조선 세상'이라고 한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우카리트 문서에는 다곤(단군)신 이름이 여러 번 거론되었고 실제로 발견된 신상 조각도 동이 웅족(熊族)의 모습이다. 또 그 문서는 메소포타미아에서 'dagan'으로 불리었던 단군이 남부 팔레스티나에선 'dagan'으로 불리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dagan' 숭배는 기원전 25세기경에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양하 지방에서 성행하였는데 히브리어에선 '단군(dagan)'은 곡물의 신이다. 현재 바빌로니아 지방을 보면 다곤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인명이 여러 군데 보인다. 다음은 바빌론의 아무리 왕조와 제2왕조의 함무라비 그 법전 중에서 그의 창조자 Bani-dagan의 힘에 의해' 라고 쓰고 있다. 기원전 19세기경의 아시리아 열왕중에도 'dagan'이라는 두 왕이 보인다. 그리고 한인(桓因)도, '桓'은 나무(木) 와 떠오르는 해(桓)를 상징하는 글자가 결합된 것으로 해가 떠오르는 숲의 나라, 그리스 시대의 올림포스이고 수메르인들의 아돔(Adom)이다. '因'은 하늘(大)과 울타리(口)가 결합한 글자로 역시 해가 떠오르는 지점의 신전을 가리키는 글자이다. 따라서 '因'은 수메르에서 우두머리의 신을 '인en' 혹은 천신(天神)을 '인an'이라고 한다. 한웅의 아버지 '한인'과 사르곤의 아버지 '다곤'이 모두 어느 특정한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의 직함이라는 걸 알 수 있다. '一然'은 매우 박식한 스님이었다. 그는 그 당시 왕래하던 외국인 학자나 혹은 유식한 외국인들을 상대하였다. 그리고 불교의 문헌 집에서 인드라 신화와 바빌론의 '다곤'의 신화를 알게 되었을 것이고, 또 서구에서 기독교의 문물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더욱이 터키 상인의 친분으로 지중해의 전설을 흥미를 가지고 귀담아 들었을 테고, 혹시 '다곤'이라는 지방에서 건너온 사람으로부터, 그 지방의 설화를 듣고 '다곤'이 곡물의 신(神)이라는 사실도 뻔히 알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一然'은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소유이지 힘을 가진 왕권이 행사할 땅이 아니라는 것을 공포하여 고려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 그 후손의 나라라는 것을 천명하기 위해 '다곤신화'에서 이름을 빌러 와 '단군신화'로 각색했던 것이다. 사실 '一然'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上帝)라는 창조신화를 믿었다. 그는 불교 도인으로 베다의 인격신을 믿는 신자이다. 더욱이 고대의 전설을 통해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 사실 한배달 민족 고유의 사상에는 인격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샤머니즘도 창조의 신은 자연이며, 특히 선도 사상, 유가 사상에도 천지만물의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우주가 생겼다고 이야기한다. 불교는 인격신을 믿고 있는 종교이다. 즉 제석천의 존재를 밝히고 있으며, 인간에게 영혼이 있으므로 죽어서 초인적인 인간들이 통치하고 있는 지옥과 천국을 오고가며 자아의 영혼이 윤회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기독교 신비주의 사상과 너무도 흡사한 교리를 내세우고 있다. 아마도 지역적으로 석가모니가 살았던 지역에도 바빌로니아의 신화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아틀란티스의 문명의 혜택과 영향을 받은 지역이라서 인도는 어느 나라 못지않게 수메르 문화의 보고인 나라이다. 불교는 상당히 그리스적 경향이 짙은 종교이다.하지만 한배달 민족의 고유한 민속신앙은 불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니며, 샤머니즘과 선도사상이다. 한배달 민족의 역사에 상고시대를 배경을 무대로 삼은 신화는 유일하게 단군 신화 뿐이다. 한배달 민족의 역사의 변천사를 연구해 보면 상고시대에 나라가 단군의 나라에 대한 존재 여부를 가려낼 만한 어떤 자료적 근거는 없다.그래서 단군의 나라를 부정할 실제적인 근거가 없지만, 문제는 다곤(단군)의 신화는 한배달 민족 정서에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정말로 상고시대에 한배달 민족이 일정한 주거지를 정하고 집단생활을 하였다면, 그리고 그 시대의 신화가 전해지고 오늘까지 한배달 민족의 가슴에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 신화가 있었다면, 그것은 당연히 샤머니즘으로 꾸며진 내용으로 전승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배달 민족의 샤머니즘 신화에 천지창조에 관한 신화는 있어도 어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꾸며진 상고시대(구석기 시대)의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발해와 부여국, 그리고 고구려 왕조신화인 주몽의 신화는 한배달 민족의 정서를 상당히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신화는 민중들의 구비문학에 의해서 야사로 전해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록된 것이다. 단군신화는 한배달 민족에게 국한된 신화가 아니라 세계를 겨냥한 신화로 작성한 것으로 보아서 어쩌면 '一然'에서 선견지명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서 오늘날 한배달 민족들이 인지할 부분은 국수적 안목을 벗어나 인류 전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주지하는 바, 바빌론 시대, 수메르 문화의 유적에 '熊'족'으로 보이는 동양인 흉상들이 모두 위대한 신(神)으로 숭배되고 있다. 그 흉상의 동양인 '熊'족의 모습인지, 그리고 그것이 아닌지, 대한 문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지중해 문명이 동양과 서양이 통일된 최초의 문화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 유적지에서 발굴되는 유산들이 고대의 문명을 이룩했다는 전설적인 '무' 대륙의 문명을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무' 대륙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정할 수도 있다. 인류 역사에 아주 까마득한 과거사라, 어차피 그것을 확인할 길이 막연하다. 하지만 무Mu 대륙의 존재를 근거 삼아 태평양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에, 이를테면 하와이 제도. 마리이나 제도. 통카타푸 섬. 이스터 섬. 그리고 북미. 남미 등지에서 발견되는 유적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시대적으로 무Mu 대륙은 13만년 전 지구애서 사라졌으며, 지중해 문명은 불과 일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이 연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적에서 발견되는 문명이 사로 비슷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무'대륙에 살고 있던 원주민의 후손들이 지중해로 옮겨와서 고도의 기술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하여간 수메르 유적에 발견된 곡물의 신(神) 다곤[단군]의 흉상은 분명히 '무' 대륙의 원주민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얼굴의 주인공이 외계인의 지식과 기술을 지구인으로 유일하게 전수 받은 최초의 선구자가 '熊' 족 이다.
지구인의 고대사 하나님이 인간을 낙원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갑자기 험악한 광야로 내쫓아 버린다. 이것은 외계인들이 원시의 동물적인 인간을 영적 진화로 개선시킨 다음에, 그들이 원하는 유체를 얻기 위해 인류가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도록 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는 실험실에서 과학의 기술로 해결할 수 있었으나, 정신의 문제는 형이상학의 초과학에 해당되기 때문에 현장 실습을 통해서 초심리적 교육 방침으로 인류의 영적 진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가운데 '熊' 족들이 다른 인종보다 영적 진보가 빠르고 우수하여 그 높은 영적 에너지의 발산을 선호하게 된 외계인들이 특별 대우로 '熊' 족을 모든 인류의 본보기로 삼고자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였다. 나라마다 개국에 관한 신비한 이야기가 있으며, 대체로 그 내용은 신화로 전승되도록 설명하고 있다. 개국신화는 한 나라의 민족적 내면의 역사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의 역사가들은 인류 문화의 시원을 신화에서 찾으려고 한다. 신화 이미지는 아득한 옛날부터 앞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전수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화를 통해서 인간은 내적인 신비, 내적인 삶, 영원한 삶을 확장시켜 주는 놀라운 영적인 힘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어떤 사상의 신화보다 샤머니즘 신화가 인류의 내면세계를 가장 심오하게 표현했다고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그 신화의 원류를 찾아서 인류 문화의 시원을 밝히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 한민족이 단군신화는 세계 문화의 원조가 되지못하고 주변의 영향에 모방되었다고 한다. 사실이 그런데 사이비 단체나 국수주의자들이 단군신화가 한배달 민족의 시원을 밝힌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한다. 단군신화는 인간의 정신세계에 있어서 상당히 논리적 체계로 설정된 이야기이다. 그리고 '一然'의 학문적 지식에 의해서 각색한 모양새를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른 즉 한배달 민족의 꿈이나 무의식이 아니라 '一然'의 개인적 사상과 이성의 안목으로 어떤 사실을 과장하여 꾸며져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단군 신화는 에토스(윤리적 겨레 정신)의 힘이 결핍되어 있다. 비교하자면 고구려 개국신화, 백제의 개국 신화들은 한배달 민족의 에토스가 철철 흘러 넘치고 있다. 한배달 민족의 에토스는 샤머니즘의 모태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단군은 서구의 에토스인 그리스와 바빌론 사상에서 태어난 다곤(Dagon)을 불교의 신화에 첨가하여 만들어 낸 인물이다. 고대 한배달 민족의 에토스는 인간이 곧 자연이며 그 자연의 힘을 신화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바빌론의 아모리 왕조가 꿈을 꾼 신화는 인간이 곧 하나님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상고 시대에는 세계적으로 어느 곳에도 왕조가 세계를 휘어잡을 정도 세력을 가진 국가가 형성되지 않았다. 1만 년 전부터 6000년 전 사이에 세계적으로 제국과 왕국들이 형성되었다. 대체적으로 그 연대에 왕국이나 제국들이 실재로 존재한 역사의 흔적들이 현대역사와 함께 살아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유적이나 유물에서 고대의 역사를 증명해주고 있다. 중국도 비슷한 연대의 유물들이 출토된다. 그런데 어찌하여 고조선의 유물은 세계 땅 구석구석을 헤집어도 단군 왕조를 설명해 줄 유물 하나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삼국유사에서 잃어버린 단군의 역사를 환단고기에서 그럴듯하게 복원해 놓고 있다. 그래서 환단고기에 기록된 것을 한배달 민족의 역사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환단고기가 언제 쓰여졌는가? 서양의 역사 문화가 한반도에 유입된 이후에 쓰여졌다. 단군왕조의 역대기를 순번으로 나열한 방식이 기원전 22세기 때 존재한 lsin 왕조의 열왕의 이름을 열거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바빌론의 아모리 왕조와 제1왕조의 함부라비는 그 법전 중에 그의 창조자 yasub-dagon의 힘에 의해 라고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왕조의 인명에 다곤(dagon단군)의 역대기로 표기되어 있다. 아무튼 '檀君世紀'에 단군의 역대기는 고대 왕국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단군의 이야기는 분명 신화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로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단군의 이야기는 한배달 민족 에토스 전통에서 구비전승 된 신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변하고 있다. 만일 그것이 순수하게 한배달 민족의 신화라고 한다면 환단고기(檀君世紀)같은 역사를 기록한 별도의 책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단군이 한배달 민족의 에토스에서 존재하는 신화가 아니기 때문에 신성한 겨레의 정신을 함부로 날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단군이 한배달 민족이 꿈꾸는 신적인 존재라고 진정 생각한다면 '桓檀古記'에 기록한 역사적 사실을 들먹거리는 것은 그 신화에 대한 모독이며 신성을 함부로 해치는 몰상식한 행위인 것이다. 요컨대, 단군신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의 국조신화에다 맞추려는 그 당시 고려의 정치적 경험을 엿보이게 한다. 그리고 단군의 신화는 순수하게 한배달 민족 고유의 전설이 아니라 지중해 근동 아시아의 신화들이 인도로 유입되고, 그것이 불교를 따라서 한배달 민족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설화로 각색되었다. 본래 한배달 민족은 샤머니즘을 고수한 민족으로 고유의 사상에는 인격신을 숭배하는 사상이 한민족의 토양으로 볼 때 체질적으로 태어날 수가 없다. 설사 그럴 가능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상고 시대의 한민족 사회가 인격신이 숭배의 대상이 될 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다. 신화는 한 사회가 희망하는 집단적인 꿈의 세계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학자들은 신화를 창조한 민족을 연구하여 그 결과를 가지고 인류 전체의 정신에 원류를 발견하려고 한다. 한배달 민족 정서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하늘에 대한 숭배 사상은 하늘이 사람의 마음으로 이루어진 세계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천지를 다스리는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존재로 보았다. 그리고 그 실제적인 힘의 주인이 태양이고, 그 태양이 주님이고 바람, 비, 그리고 구름 같은 자연의 힘이 만물을 다스린다고 생각하였다. 이 샤머니즘 사상은 사람과 하늘을 연결해 주는 것이 초자연의 힘(내면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이 아직 미천하여 감히 하늘과 직접 관계를 맺을 수가 없기 때문에 초자연의 힘을 가진 영험한 무당을 자연스럽게 숭배하였던 것이다. '一然'이 쓴 삼국유사는 정사가 아니라 야사로 찬저된 사서이다. 그 때가 13세기이므로 한배달 민족의 지배계급 층들은 한민족 전통 사상인 선도의 신앙을 멀리하고 새로운 불교의 사상에 심취하여 샤머니즘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와 같은 사회적 시대적 요구 가운데 '一然'이 삼국유사를 저술하면서 한배달 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고증할 만한 근거를 찾다 보니 자연히 불교 영향으로 지고신(至高神) 절대 인격체를 숭배하는 신앙의 세계에 의탁하여 각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고려인 민중들 사이에 단군의 숭배 사상은 현존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우랄 알타이어족들의 거류 지역에서 전래된 신화를 살펴보아도 단군신화를 입증할 만한 어떤 유사한 이야기조차도 꺼낼만한 것이 없다. 단군신화가 상고 시대부터 구비 전승으로 내려온 이야기라면 어찌하여 우랄 알타이어들 거류지역에 살았던 동이족의 후예들이 단군의 존재를 모르리 있겠는가? 조선왕조가 초기에 명나라로부터 기자(箕子)숭배를 강요를 받고 자존심이 상하여 사신이 보고하기를, 단군(檀君)도 마땅히 제사(祭祀)하는 예를 갖추자고 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직도 조선인 귀족이나 학자들이 단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민간신앙의 무속화를 살펴보면 호랑이 할아버지 탱화는 볼 수 있었지만 단군 할아버지 화상의 탱화는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본래 한배달 민족은 조상 섬기기를 세계 으뜸인데 어찌하여 국조에게 예를 올리는 행위를 수천 년간 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단 말인가? 아무튼 사리 분별하여 단군신화는 '一然'의 손에서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一然'이 전혀 근거도 없는데 순수 창작물로 단군신화를 각색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매우 용의주도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고도의 각색의 수법을 사용하였다. 첫째 중국의 위서는 인용했다는 점이다. 요컨대 중국의 위서에서 말하기를, 중국 동쪽으로 가면 요, 순에게 복종하지 않은 동이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발(發), 조선(朝鮮)이라 하였으며, 그 땅이 8백 리라 하였다. 이 위서의 대목을 한배달 민족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에다 고증을 삼을 수 있도록 교묘히 장치한 다음에 고대 불교의 경전인 베다나 법화경에 나오는 제신의 이름을 빌려서 단군신화를 구성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인드라(Indra)를 한문자로 쓴 것이다. 인드라는 하늘나라 빛의 신이다. 이것을 햇님불교(帝釋天)를 한인(桓因)이라고 바꾸어 부른 것이다. 그리고 제석천, 즉 하늘나라 임금이 서자인 한웅을 태백산에 내려 보냈다는 것은 장자(長子)는 앞으로 자신의 대를 이어서 천왕(天王)을 계승해야 하므로 할 수 없이 하늘 아래 땅으로 다른 아들을 내려 보내게 된다. 그 아들이 하늘(陽), 그리고 땅(陰)이 만나게 되었으니 그 아들이 나무(木)즉 단군(檀君)이 된다. 하늘[乾]에서 내려온 천신을 아비[父]로 하고, 땅[坤]의 지기를 모[母]로 하고 아들[檀君]이 아침을 밝은 나라 임금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해가 사방사시(四方四時)를 돌며 오행(五行)이 상생(相生)한다는 해의 윤운동(輪運動)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일연의 순수한 생각은 상고 시대부터 우리 나라가 있었고 그 나라를 지배한 위대한 군주 왕검(王儉)같은 인물이 있었다고 주장함으로 과연 한배달 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一然'은 삼국유사에서 단지 한배달 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단군신화를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단군신화가 세계인 종교사상을 수용하는 대사상(大思想)을 표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주장하는 것일까? 종교 사상이라는 것은 인간의 존재를 제도하는 진리를 말한다. 그런데 단군은 전혀 종교에 관한 진리를 한마디도 말한 적이 없다. 기껏 삼국유사에, 한웅이 있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를 탐내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 여기에 대목을 인용하여 사람들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이야기한다. 이것을 두고 홍익인간 사상으로 전개하여 마치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민족이 한배달 민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국수에 관한 논제이다. 하지만 삼국유사를 잘 읽어보면 홍익인간을 펼치는 존재는 하나님이다. 당연히 하나님이 인간을 이롭게 하는 존재이다. 이것은 단군의 정신이 아니다. 삼국유사에 단군이 무슨 생각으로 나라를 세우고 백성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 분의 사상이 무엇인지? 이런 것은 아예 밝혀진 바가 없다. 이렇게 정신적인 것을 완전히 감추고 있고, 게다가 마지막에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주나라 무왕에게 분봉국으로 나라를 빼앗긴 단군을 숭배한다는 것은 정말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삼국유사의 존재하는 단군의 정체성보다 인류의 신화속에 존재하는 단군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우리들이 삼국유사의 신화에 등장하는 단군은 일연의 개인적 정체성으로 접어 두고, 실재로 다른 곳에서 단군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면 한배달 민족의 민간 신앙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한웅(桓雄)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한웅의 아버지가 한인(桓因)이며, 한인을 대웅(大雄)이라고 불렸으며, 그 존재가 북두칠성 자미대제(紫微大帝)이고 대웅(大雄聖尊)이라고 존칭하고, 그 아들을 한웅성존(桓雄聖尊)이라 부르며, 그 외계인 한웅이 지구에 내려와 가르친 제자(弟子)가 호씨? 즉 산신령(山神靈)이다. 한배달 민족 민간신앙의 지고신(至高神)이 '紫微大帝' 이며, 그를 '大雄'으로 추앙했다. 불교가 한배달 민족에 들어와 토착화 되기 전에는 강산에 고을마다 대웅(大雄)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 그런데 규모가 큰 사당에는 불교의 사찰들이 재건되어 들어갔으며, 한배달 민족의 선도 사상에는 풍수지리를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옛날 대웅전 사당은 풍수 지리적 조건이 구비된 명당자리에 들어서 있었으니 불교가 어찌 탐내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불교가 한반도에 갑자기 부흥된 것은 우리 민족의 선도사상을 바탕으로 명당자리에 미리 준비된 바탕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웅전에 후광을 발산하고 있는 신인(神人)의 모습으로 그려진 그 화상(畵像)도 고대부터 내려온 민간 탱화를 복원하여 불교 문화로 이용한 것이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옛날 대웅전 사당에 불상은 없었는데 불교가 들어와서 그곳에다 불상만 하나를 댕그라니 올려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불교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대웅전의 장식 구조, 제단의 모습들도 우리 고유의 선도 사상에 의해 전승되어 내려온 사당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우리 전통의 사당이 약간의 변형이 된 상태지만 그래도 보존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머리를 깎고 최초로 스님이 된 사람들도 대웅전 사당지기나 도인, 그 사제들 인 것이다. 사실이 그런데 '一然'이 삼국유사에서 한배달 민족의 민간 신앙의 계보를 우리로 인용하여 조선 개국신화로 발췌(拔萃)하는 과정에서 자미대제(紫微大帝)를 불교식으로 '桓因: 빛의 존재'로 번안하고 '紫微大帝' 가 인간화생(人間化生)한 존재를 '桓雄' 혹은 '大雄'의 동질성 인물을 바빌론 신화같이 '父子'로 분리하였다. '대웅'은 '紫微大帝'를 실명하고, '紫微大帝'가 인간화생한 존재를 아들로 변신하여, 이를 '한웅'이라 하였다. 이렇게 짜 맞추는 식으로 구성한 과정에는 별로 무리가 없으나, 문제는 단군(檀君)을 등장시키는 과정에서 상당한 오류를 발생시켰다. 단군은 민간신앙에 존재한 인물이 아니다. 단군의 명칭은 지중해 크레타섬 '크노소스신전'의 교황을 말 한다. 단군신화의 마지막 부분에 일연이 말하기를 조선을 주나라 무왕의 기자(箕子)에게 분봉국(分封國)으로 넘기고 숨어 지내다가 산신령이 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이 내용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고려국이 중국의 봉건제도에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실토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세계 정치사로 볼 적에는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역사이므로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一然'은 단군이 산신령으로 생을 마감하게 만들었는가. 한배달 민족의 민간에 성행한 전업종교는 두 분류로 형태로 갈라져 있었다. 쉽게 말해서 술사와 무당이다. 이들은 서로 한패 거리로 세속에서 업을 했으나 서로 숭배의 대상은 서로가 다르게 격을 두었다. 술사들은 도사들이 관리하는 대웅전을 숭배하고, 무당들은 도사들이 관리하는 산신각을 숭배하도록 하였으며, 산 속에 모여서 수행하는 도인을 신선이라 불렸고, 그들의 도력이 출중하여 유명해지면 나중에는 산신령으로 추앙되기도 했다. 그리고 속세에서 전업으로 먹고살아 가는 술사와 무당들은 도사(道士)를 배후세력으로 모셔야 그런 대로 이름을 걸고 업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무당은 성황당이나 집안에다 귀신화상을 걸고 주술과 굿을 했으며, 도사들은 대체적으로 사당이나 산 속에 틀어박혀서 수행과 명상에 몰두하면서 예언,점, 책사, 풍수 등 방술 등을 연구하였다. '一然'이 삼국유사의 '檀君' 마지막 생을 산신령으로 마감시켰다. 그 당시 고려 시대에 사찰도 산신각은 지금같이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들의 숭배 장소이다. 단군이라는 존재를 산신각에 신령님으로 만들어 마치 살 발라먹고 뼈다귀는 개에게 던지듯이 소위 국조로 등장시킨 '檀君'을 무속인의 숭배 대상으로 내 몰은 처사는, '一然'의 입장으로 볼 때 그렇게 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는 불교 신자이고, 또한 도인인지라 자신이 만들어 낸 인물을 자신이 숭배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당시 권세를 누리는 승려들의 반발도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무속인들은 '檀君'이라는 존재를 그때까지만 해도 까맣게 모르고 지냈으며, '檀君'이 부각된 것은 세종 9 년에 비로소 조정이 단군을 국조(國祖)로 인정하는 역사관을 바르게 고쳤다는 것과 임진왜란 이후부터 민중의 힘을 모우려고 일부러 단군숭배를 사회적 분위기로 조성했다는 점들을 내세운 술사들이 '檀君'을 교주로 모시고 그들의 세력을 확보할 수 있는 단군종교를 태동시키고, 그들이 민중에게 한배달 민족은 고래부터 '단군'을 숭배했다고 설득하고 있다. 고려 때 몽고의 침략이 심화될수록 자발적인 민병대를 차출할 목적으로 단군을 민족 공동의 시조(始祖)로 표방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 단군을 내세우고 민족 자존심을 유지하려는 의례적인 행사도 있었다. 황해도 구월산에 삼성당을(三聖堂) 지어놓고 단군의 신앙을 민간 차원에서 종교적 욕구를 충족하도록 하였으나, 이것은 형식에 그쳤고, 단군사당의 사적지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만 지금 남아있다. 만약에 '一然'이 생각에 정치적 이념, 혹은 사회적 이념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단군의 신화를 위작한 것이라면 이것은 한배달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아주 부도덕한 정서로 물들이고 있는 위험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은 단군의 신화가 한민족의 심성을 혼란시키고 있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뺀다' 라는 속담이 있듯이 한배달 민족의 심성이 외래 심성에 치여 자존심을 다치면서 살아가는 이유가 한배달 민족의 긍지를 내세우는 우주창조에 관한 기원신화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의 심성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 그것이 한민족의 고유한 신화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눈감고 야옹해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인격신이 각색된 다음에 인도의 원시 불교가 한 수를 걸려 내더니, 중국의 유교적 삼재 사상까지 끌어들이고, 게다가 나중에는 근거도 없는 동화를 삽입해서 태어난 것이 조선의 개국신화이다. 이 신화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한배달 민족 내면의 생명을 완전히 묵살한 것이다. 본래 나라의 개국신화는 기원신화의 천지창조설부터 시작하여 하늘로부터 강림(降臨)하는 형태이고, 다른 한편은 란생신화(卵牲神話)의 형태로 설화가 꾸며진다. 그러나 단군신화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형태로 시작되었다. 아마도 일연은 단군신화를 민간의 무속신앙의 설화를 채록하여 '이런 신화가 있었다'하는 식으로 흘러버리고 있다. 대신에 '一然'의 내심은 한배달 민족의 본격적인 역사의 신화를 주몽 신화와 금와왕 신화를 통해서 민족의 내면세계를 표상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한웅천왕은 북두칠성님 우리들은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서 더 멀리 바라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일연의 생각이 바로 그 멀리 있는 세계를 뚫어지게 바라본 뒤에 단군신화를 한배달 민족의 시조설화로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의 지식인들은 우주 천지를 한 눈에 꿰뚫어 볼 줄 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가진 지성인 이였다. 비록 단군의 설화가 바빌로니아 전설을 불교적 형태로 이야기하였으나, 진정으로 우리들이 생각할 점은 그 내용에 담겨져 있는 우주의 비밀에 도전하여 그것을 명확하게 파헤쳐 우주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천부주작인(天符印)에 관한 것이다. 한웅천왕은 북두칠성님 대웅의 화신(化神)이다. 하나님이 강림하여 한웅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한민족 고유한 신앙의 핵심이다. 그리고 여기서 유일하게 한배달 민족의 고유한 신앙에서 발견되는 우주의 비밀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천부주(天符呪)의 삼인(三印)이다. 한웅천왕의 천부주작인의 효험을 지중해 크레타섬 크노소스신전에서 행사하였다는 것, 그곳에서 단군(교황)이 천부주작인의 권력, 권능 권세로 휘어잡고서 세계를 종교로 통치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한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처음에는 바이칼 호수 근처에 정착하고 사방에 흩어진 알타이 어족 원시인을 집결시킨 다음에 아틀란티스 대륙으로 대이동을 감행한다. 그곳에 신시를 건설하고 그리하여 하나님을 숭배하는 새로운 종교를 전파하여 교화시키는 임무를 이행하였다. 외계인들이 지구인의 유체를 포획할 목적으로 인류를 진화로 개혁하여 낙원에서 광야로 내쫓은 이후로, 알타이 어족(語族) 이 다양한 인류의 집단들 중에서 가장 빠르게 자주적인 고도 문화를 창출하였고 영적 진보에도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 그래서 외계인들이 알타이 어족 원시인의 유체를 최고의 등급으로 인정하여 하늘 사람들이 가장 탐내는 물건 이였다. 한웅은 먼저 알타이 어족의 유체를 보호하고 구제하기 위해서 바이칼 호수 근처로 도래하였던 것이다. 그곳이 사방에 흩어진 알타이 어족을 집합시키는 장소로 가장 적절하였다. 알타이 어족 중 한반도의 동이족들이 영적으로 초월한 소수 집단이었다. 고대에는 근친끼리 결혼하여 씨족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촌락들이 있었다. 특히 한반도 깊은 산골에 사람들이 대개가 그랬다. 백두산 산골에 호씨 일가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이 한웅의 소식에 놀라며 사람이 되려고 집결지로 달려갔다. 삼국유사에서 '熊'은 사람이 되고 '虎'는 사람이 못되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 모델이 된 민담의 내용은 좀 다르게 전하고 있다. 하늘님 앞으로 호랑이 한마리와 곰 한마리가 찾아와서 엎드리고 소망을 이야기하였다.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늘임이 대답하기를, '좋다, 너희들 소원을 들어주겠다.' 하늘임이 그들에게 신령스러운 쑥-야생 쑥즙에 독한 마약성분 압생트가 함유되어 있다-을 주고 이르기를, '너희가 이것을 가지고 굴속에 들어가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하여간 유유 곡절 끝에 두 짐승은 소원대로 사람이 되었고 그들이 8명의 아들을 낳게 된다. 그 아이들이 나중에 한배달 민족의 8대 명산을 차지하고 산신령이 되었다는 전설이고, 또 다른 전설은 옛날에 산신령 부부가 살고 있는데, 산 할아버지 전생이 호랑이고, 그 아내 산 할머니는 전생이 곰이었는데 그들이 자식을 낳아서 8대 명산으로 보내어 신선세계(神仙世界)를 지키게 하였다는 전설이다. 한웅에게 달려간 호씨? 그는 신선사상가(神仙思想家)로서 한배달 민족의 전형적인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자신의 바탕에 한웅으로부터 새로운 영적 진보를 체험하였고 따라서 천부주 비결도 공부하여 초능력을 갖게 되었으나, 그는 한웅을 따라서 지중해로 갈 수가 없었는데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과 병든 부모님을 모시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한반도 8대 명산을 두로 돌아 디나면서 평생을 천부주 비결로 수행을 일삼았으며, 그가 대각을 이루자 그 분의 유체가 하늘로 승천하였다. 하늘나라에 도착한 그 분은 천인으로 재생(부활)하였다. 외계인으로 재생한 호씨는 한웅감군에 합세하여 미륵부처로서 한태일(桓太一)의 임무를 이행하고 있다. 호씨는 한반도 8대 명산을 거점으로 하늘나라의 선도를 지구인에게 최초로 전파한 장본인이며, 그는 언제나 산신령 모습으로 화(化)하였는데, 바로 그 형상에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산에 산신각을 지어서 소원을 빌고 제사를 드렸다. 그가 한웅으로부터 맡은 임무는 한반도의 동이족을 하늘나라 좌도방 선도를 알려서, 그리하여 루웅의 유령체에 물들지 않도록 바른길을 찾아 주고, 지구의 생을 마지막 윤회로 끝내서 극락 영생하도록 인도하는 일이었다. 오늘날에 사찰의 산신각이나 무당 집에서 안치된 산신령의 초상화는 바로 그 호씨? 초상화이다. 오늘날 한배달 민족의 선도 사상의 주체성을 확립하게 된 것은 '단군'이 아니라 '호씨'의 공헌이다. 그래서 무속의 탱화에 흔한 화상에 호랑이와 산신령은 한배달 민족 샤머니즘 야담의 주인공 '호씨'를 상징한 그림이다. 사실이 그렇다. 호랑이를 곁에 둔 산신령 할아버지 화상은 전래되어 왔지만 단군의 화상은 전래되어 내려온적이 없었다. 지금도 웬만한 사찰에 가 보면 대웅전- 이 대웅은 한웅과 관계가 있다- 뒤 높은 터에 칠성각과 신신각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단군의 초상화는 외면시 되고 있다. 대웅(大雄)이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되었는가. 북두칠성을 대웅성(大雄星)이라고 한다. 북두칠성의 별자리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 너머에 자미원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한웅의 무리들이 내려 왔다. 그 한웅의 무리를 지구로 내려보낸 한인(桓因)을 대웅(大雄)이라고 한다. 외계인들이 은하를 건너서 지구에 도래한 목적은 지구인의 유체를 살육하는 루웅감군의 루괴(壘塊)들을 대적하여 지구인의 유령체를을 제도하고, 보호하고, 지켜 주라는 뜻으로 '웅(雄)'이라고 호칭하였다. 한배달 민족의 사찰의 대웅전은 바로 북두칠성에서 내려온 한웅감군의 영웅들이 지구에 내려와 그들의 제우스(祭釋天) 한인(大雄)을 모시는 제단(祭檀: 크노소스)을 형식을 우리로 옮겨놓았다. 한인은 하늘나라 도인(道人)의 스승님(道師)이시다. 이 말은 다른 의미로 은하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사나타나)를 다스리는 하니민의 아들 주님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주님의 권능은 무한의 힘, 그리고 주님의 본성은 하나이다. 상고시대부터 지금까지 샤머니즘 즉 '巫'의 사상은 알타이 어족만이 생각해 낸 유별난 신앙이다. 그리고 '巫'를 통해서 혈연 동질성을 자기화하면서 오랜 전통으로 천착하여 국지적 신앙에 으뜸으로 숭배해 왔었다. 그리고 한배달 민족이 외래의 종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어떤 경우라도 어김없이 무교(巫敎)의 사상을 기틀에다 맞추어 가려낸 다음에 한배달 민족의 정서에 맞도록 종교로 변질시켜 왔다. 그래서 한배달 민족의 불교, 유교 기독교는 나름대로 특색을 갖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불교의 사상에는 중생을 제도하고 존재가 삼십삼체(三十三體)의 하나인 관세음보살 부처이다. 이 관세음보살은 삼십삼천을 다스리는 주님(帝釋)이시다. 이 제석帝釋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한인(桓因; 大雄; 上帝; 帝釋은 모두 같은 이름임)을 가르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배달 민족의 사찰에 대웅전에 모시는 부처상은 인도의 부처를 아니라 그 형상물을 통해서 한배달 민족의 부처인 한인(桓因:大雄)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단군 초상화의 위작설
대인과 소인 대인은 성인(聖人)의 경지를 완성한 사람을 뜻한다. 성인이란 자신보다 타인의 삶을 걱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성인들은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고 가르친다. 또한 타인을 비판하고 분석하고 따라서 간섭한다. 그러나 소인들은 언제나 자기 자기만을 생각하고 있으므로 타인의 삶은 안중에도 없으므로 타인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타인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때로는 군자인 척 위선과 만용을 부릴 줄 안다. 아무튼 성인이 되지못한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이 육체적으로 여자이든 남자이든 상관없이 영적으로 볼 적에 아직은 모두 여성이다. 우리가 말하는 여성의 의미란, 그 의미 자체를 전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여성적 이미지를 이야기한다. 그들은 생명의 에너지를 경제력만을 강화시키려는 미친 발광을 부리고 있다. 그 존재의 세계가 작고 빈약하며 가련하고 나약하여 아직도 미숙한 영적 상태로 살아가는 소인(小人)들을 기르기는 말이다. 소인(小人)들은 하나같이 대영계의 우도방을 총괄하는 권능을 가지고 하나님의 첫째 아들로 태어 난 대법천사(大法天師) 루웅(壘雄)을 숭배하고, 그 텔레파시의 궤이사(QSRS)의 전파원 스펙트럼에 관계하고 있다. 지구인 중에서 대인들은 대영계의 죄도방을 총괄하는 권능을 가지고 하나님의 둘째 아들로 태어 난 대법천사(大法天師) 한웅(桓雄)을 숭배하고, 그 텔레파시의 퀘이사 전파원 스펙트럼에 은총의 신봉자로 관계하고 있다. 그런데 루웅과 한웅의 텔레파시 감응에 통과하려면 천부주의 세 가지 태양의 코어 에너지를 이용해야 한다. 소인들과 대인들이 천부주의 동일한 루트를 할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동일한 전파의 통로에서 황당한 시도할 적에는 서로가 다른 레벨을 가지고 행동하게 된다. 그 레벨은 어떤 형태장의 천부주작(天符呪妁)을 가지고 하나님을 숭배하고 있는가?, 그 사실에 모든 것이 결정적으로 판가름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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